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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후기/일본 북부 겨울 자전거 여행

여행 중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 어떡하지?

계획했던 여행 일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홋카이도 눈길을 달리는 자전거에 문제가 생기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호텔 방 구석구석을 살피고 짐을 챙겨 호텔을 빠져나왔다. 삿포로에서 구매한 핑클이(자전거)와 함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활기찼다. 눈길을 달리는 버스,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얀 눈으로 덮인 건물들까지. 지난 3개월 동안 계획하고 준비한 일본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는 날. 과정으로 한 번 삿포로에서 오사카 구간까지 상상 여행을 한 터라 앞으로 시작될 나의 여정이 즐겁기만 했다.

일본 최남단 홋카이도에서 시작해 일본인에게도 유명한 길로 손꼽히는 일본 쪽의 동해를 달려 오사카까지 이어지는 여정. 지나치는 도시로 이야기하자면 삿포로, 하코다테, 아키타, 니가타, 알펜루트로 유명한 도야마와 세계 유네스코 지정 마을 시라카와고 그리고 기후, 나고야, 교토, 오사카로 이어진다.

자전거로 눈길을 달리는 방법 어렵지 않아요.

어젯밤 미리 알아놓은 도로를 따라 오늘의 목적지 시코츠 호수로 가기 위해 인근 도시인 치토세로 방향을 잡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도로마저 눈으로 쌓인 신 삿포로역 주변.

다행히 어제 눈길 위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혔고, 무엇보다 떠난다는 설렘으로 미끄러운 눈길이 마치 약간의 비가 내려 미끄러운 축축한 잔디밭같이 느껴졌다.

여기서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눈길에서 과연 자전거 탈수 잇느냐는 질문의 답이다. 처음 자전거로 이 여행을 계획한다고 했을 때 가까운 지인은 물론 일본인조차 절대 무리라며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나 역시도 불가하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시간이 더 많더라도 자전거를 이용해 여행하고 싶었다. 물론 폭설로 눈길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 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떄는 잠시 절망 도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은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져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브레이크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안장을 낮게 해 한쪽 발을 내려 중심을 유지하며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잘 이용하면 넘어지지도 않고 빠르진 않지만 걷는 것보다는 2~3배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멈추어 버린 자전거. 조금씩 두려움으로 바뀌는 시간. 

그래 이렇게만 가면 되는 거야. 눈길에서 자전거로 달리는 방법을 터득한 나는 성공이라는 기쁨에 도취했다. 좁은 인도로 가다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를 건넬 정도로 여유로움과 함께.

그리곤 생각했다. 이번 여정 시간 동안 고민하고 풀고 싶었던 많은 문제를. 지난 1년 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나였기에 지금 이 시간만큼은 작지만, 나의 발이 되어주는 자전거 위에서 길에게 길을 묻고자 끊임없이 나의 고민을 늘어 놓았다.

내가 귀찮아서일까? 아니면 핑클이도 나의 여정을 말리고 싶을 걸까? 삿포로 시내를 뒤져도 구매할 수 없었던 자전거를 인터넷 거래 사이트와 지인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힘들게 구했는데, 오전 시간 이후 조금씩 불안하더니 세 번의 잔고장에 이어 자전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큰 고장이 발생했다.

다른 여행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변수라 생각하고 웃으며 해결책을 찾아봤지만, 프레임에 여러 부품이 연결된 견고한 자전거를 아마추어인 내가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회사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나 여행을 하는 여행자나 누구든지 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존재한다. 그러한 변수를 어떻게 해결하고 나가는지가 성공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획한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활활 타오르는 불씨는 두려움이라는 어둠속에 뒤덮이게 된다.

이것 역시 나의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거야. 모든 문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상황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지난 여행을 통해 배운 나였기에 애써 미소 지으며 두려움을 털어보려 했지만 이미 나의 가슴 한편에는 불가능하다는 두려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잔인한 선택의 시간. 어떡하지?

결국, 출발 4시간 만에 자전거에서 내려 수리점을 찾아 이름도 낯선 마을로 향했다. 불안하다. 그리고 무섭다. 자전거 위에서는 잘 몰랐는데 자전거를 끌고 가니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길이 미끄러워 아찔할 뻔한 순간을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길에게 나의 고민을 풀어놓고 물어 길을 찾으려 한 나이지만 그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힘들게 이곳까지 온 나에게 선택이라는 잔인한 숙제를 내주었고 힘들게 도착한 한 마을의 자전거 수리점에서는 겨울이면 가게 휴업에 들어가는 아저씨는 통화 후 1시간이 되어서야 만나 이곳에서는 자전거 수리가 불가능하다며 아침부터 달려온 길을 돌아가 삿포로 시내 대형 자전거 수리점에서 고쳐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외통수를 던졌다.

어젯밤 오늘부터 시작된 여정을 위해 즐겨 마시는 맥주도 마시지 않고 비상 시 마시려 챙겨왔는데 마치 과음을 한 듯 머리가 핑 돌았다. 고민했다. 또 고민했다. 지금의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괜찮다는 듯 가방 한쪽에 넣어 놓은 맥주를 꺼내 시원하게 마셔야지 하며 눈 속에 던져 놓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외통수는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알아챘는지 차가운 눈이 가득한 매서운 바람을 휘몰아쳤다.

나의 선택은 나만의 선택일뿐. 무모한 도전의 최후.

그래도 이렇게 갈 수 없지. 암 그럼. 맥주 한 캔의 위력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화이팅을 외친 건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핑클이를 끌고 걷고 있었다. 오전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기쁨으로 가득한 천사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주변의 눈과 자연에 이야기하듯 약간은 실성한 듯한 실실거리는 웃음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몇 해 전 배낭여행으로 동남아 5개국을 여행하면서 라오스 한 도시에서 만난 외국인 여행자가 버스를 놓쳤는지 현지인들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교통편이 좋지 않은 동남아에서는 시간이 중요한대 외국인 여행자가 늦게 와 버스를 놓친 것을 일정이 틀어져 버린 여행자는 현지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여행자로서 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데로 되지 않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잘못이라며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엔 광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그 여행자의 표정이 눈길을 걷고 있는 나의 얼굴에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나의 광기는 미끄러운 차도를 그것도 해가 지는 시간에 달려 목적지와 가까운 도시에 도착하겠다는 최악의 방법을 시도하게 하였고, 결국 30분도 가지 못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 경찰의 만류로 나의 무모한 도전은 끝이 났다.

' 지금까지 경찰 생활하면서 이 기간에 자전거 타고 여행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그냥 보낼 수 없으니 삿포로로 돌아가요. 자 여기 자전거 가방하고 JR 기차표 받아요. ' 

흔들리는 기차 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나의 정신은 혼란에 빠졌다. 바로 옆자리에 있는 사람이 말을 걸어도, 다음 역을 알리는 방송도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오전부터 5시간을 넘게 달리고 걸었던 그 길을 전철로 10분도 안 되 아침에 출발한 곳에 도착했다. 가방을 들고 빠져나온 역. 출발할 때 마지막으로 사진을 담았던 그곳이 아침과는 달리 휑하니 느껴졌다. 마치 나의 마음속 공허함과 같이...(to be continued)

배낭돌이 여행기는 다음뷰(이곳) 네이버(이곳) 페이스북(이곳)을 통해 실시간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삿포로 관광지 후기는 여행이 끝난 후 작성됩니다. (예고 : 삿포로 맥주의 비밀을 엿보다. 나 홀로 걷는 세계인이 손꼽은 명소 오타루. 비겁한 변명입니다.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