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게 어때? 한국에도 있었으면 하는 일본 가게.
해도 뜨지 않았는데 아침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가지고 온 로밍 휴대전화가 미쳤나 싶어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어젯밤 5분 가격으로 알람을 해 놓은 터라 정확히 5분 뒤 또다시 일어나라며 괴음을 쏟아냈다.
어젯밤 자전거를 알아보느라고 늦게 잠자리에 든 터라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알람에는 오류를 낸 적 없는 전화기였기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창밖을 살폈다.
뿌옇다. 어젯밤까지만 보이던 불빛은 온데간데없고 1m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혹시 내 눈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이 돼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온통 세상이 뿌옇게만 보였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삿포로의 폭설. 뉴스 속보로는 어제오늘 눈이 내린다 했지만, 어제 눈은 커녕 해만 쨍쨍했기에 기상예보를 믿지 않았는데, 창밖의 풍경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솜털같이 제법 크기가 있는 하얀 눈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폭설에도 평상시와 똑같은 삿포로 일상.
한참 멍하니 삿포로의 폭설을 감상할 때쯤 알람을 맞추면서까지 여행지에서 일찍 일어나야 했던 이유가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자전거 여행에 사용할 자전거 구매를 위해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시간. 어제 하루 온종일 삿포로 시내를 누비며 11월 ~ 4월까지는 자전거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밤새 고민하다 판매점이 아닌 판매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삿포로 외곽 거주자 OO 군. 조금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물건이기에 일본에서 오래 산 오사카에 거주 중인 지인에게 부탁해 상황을 이야기하고 통화를 부탁했다.
아쉽게도 개인 판매자로 알았는데 OO 군은 판매업체 직원. 보통 일본 통신판매는 택배 거래가 우선이기에 처음에는 직거래를 거절했지만, 다행히 사정을 들은 업주가 직거래를 허락했다는 말에 씻지도 않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자전거를 찾겠다며 서두르며 나오느라 잊어버린 오늘의 날씨. 바람을 동반한 폭설에 눈도 뜨지 어려운 길로 발을 내딛는데, 아무렇지 않게 어제와 같은 코스를 운행하고 있는 버스를 보고 다시 한 번 이곳이 일본에서도 눈이 많이 오는 지역 중 한 곳은 홋카이도 삿포로라는 것이 실감이 갔다.
누구나 마찬가지 갰지만 좋아하는 곳을 가거나 좋은 일이 생겨 어디론가 가게 되면 발걸음이 가볍다.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면 고등학교 졸업 후 갖고 싶었던 가방을 애타게 찾았는데 마침 적당한 가격으로 판매하겠다는 판매자와 연락이 닿아 분당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갔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다녀온 기억이 있다. 참고로 그 당시 분당에서 광화문까지 왕복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계속 몰아치는 눈바람으로 앞은 보이지 않지만 홀로 미소 짓고 있는 나. 분명 도로에서 나를 본 아줌마나, 전철 주변에 함께 서 있던 일본인 몇 명은 외국에서 온 반쯤 맛이 간 여행자로 알았을 거다.
이런 가게 어때? 한국에도 있었으면….
OO 군이 알려준 주소와 가장 가까운 JR 역에 도착. 역을 빠져나와 알려준 주소를 찾아가는데 도로 한쪽에 중고 가게가 보인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가장 신기하면서 부러웠던 것이 한가지 있다면 바로 100엔샵이었다. 당시 100엔이면 천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동전 하나로 약 3천 개 이상의 제품 중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살 수 있는 것도 신기했고, 가격 대비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제품이 있는 것이 놀라
몇 년 후 어학연수로 다시 일본을 찾았을 때 100엔샵 다음으로 부러움을 샀던 것이 바로 중고샵. 중고인지 신제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손질이 잘된 제품을 신제품의 반값 정도로 살 수 있어 배고픈 유학생들에게는 시간만 되면 꼭 한 번 들려볼 만한 그야말로 꽤 괜찮은 가게였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한 가라오케, 청소년과 20대를 위한 건전한 종합 오락공간 라운드원, 대학생과 자취생,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코인세탁실과 마을 곳곳이 있는 야구장 혹은 축구장 시설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시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몇 군데 이 같은 시설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시설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가격이 비싸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사실을 알지만 어찌 되었던 너무나 부러웠던 일본 가게. 예나 지금이라 우리나라에도 일본 같은 유용한 시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어물어 도착한 OO 군이 다니는 리사이클 회사 창고. 어제 인터넷에서 보았던 핑크색 접이식 자전거가 첫 만남이 부끄럽다는 듯 핑크빛을 연발하고 있었다.
처음 삿포로에서 자전거를 구매하여 오사카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계획하면서 산과 눈이 많은 지역이기에 위기상황에는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자전거를 선택하고자 26인치 이상 중고자전거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제 온종일 허탕을 친 만큼 빛깔도 남자인 나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고(참고로 블로거 지인 바람처럼 님은 페이스북 핑클이 사진 하단에 소녀타입이라는 답글을 남겼다.) 크기도 작은 녀석이지만 자전거를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바퀴로 눈길을 아주 빠르게 달려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겉은 작아 보여도 튼튼하고 쓸만한 녀석. 시마노 6단 기어에 안장 뒤로 충격을 흡수해주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무엇보다 단 5초면 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접혀 눈길에 문제가 생기거나 최악의 상황에 히치도 가능하다. 물론 아쉽게도 접이식이고 신제품이라 여행 예산에는 큰 타격을 받았다.
핑클이를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어제 눈길에서 안전하고 빠르게 걷는 걸음마를 배웠다면 이제는 자전거 위에서 눈길로 나아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 몇 번이고 페달에 다리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 하지만 포기해버리면 나의 여행 일정도 모두 무산되는 것이 알기에 조금씩 조금씩 용기를 냈다.
어어어 간다. 쾅.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있을까? 자신감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만 실패가 있기에 성공의 쾌락도 맞이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몇 번이고 도로 옆 눈길에 파묻혔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참고로 도로 옆 쌓인 눈은 얼지 않은 생생한 상태이기에 한 번 넘어지면 일어나기 위해 몸통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바동거리고 손과 발로는 주변 눈을 밀어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다니는 도심 한가운데서도 물론……. (to be continued)
배낭돌이 여행기는 다음뷰(이곳) 네이버(이곳) 페이스북(이곳)을 통해 실시간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삿포로 관광지 후기는 여행이 끝난 후 작성됩니다. (예고 : 삿포로 맥주의 비밀을 엿보다. 나 홀로 걷는 세계인이 손꼽은 명소 오타루. 비겁한 변명입니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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