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명물 키리단포와 아키타 밥. 그리고 호텔 선택의 치명적인 실수.
아키타 시내 중심에 있는 작은 공원(센슈 공원)에 올라 눈으로 뒤덮인 아키타 아침 경치를 감상했다.
오늘 아침 7시 30분에 아키타 항에 도착해 역에서 가장 가까운 시민 시장에 들렸다 아침 식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식당에 도착했는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산책 겸 높은 곳에서 아키타의 모습도 담을 겸 공원 정상에 올랐다.
길도 없는 산에서는 나침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공원 입구에 매우 인상적인 눈사람(?)이 있었다. 하루다 멀다 하게 내리는 폭설로 분주히 눈을 치우는 어른들과는 달리 젊은 학생들이 쌓인 눈을 찾아다니며 멋진 눈 조각상을 만들었나 보다.
입을 찢어 웃고 있는 눈사람. 귀찮은지 인상을 쓰고 있는 눈사람. 거기에 동물 형상을 한 눈사람은 가격이 비싸 일반인들은 구경 할 수도 없을 만큼 귀하다는 조각상 이상으로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 물론 내 눈에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침 김에 나도 해보기로 하고 주변을 살펴봤다. 아스팔트 도로는 물론 건물 일부까지도 눈으로 뒤덮인 아키타는 거의 모든 것이 훌륭한 조각상의 재료가 되었다. 물론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나이기에 제품은 영 아니지만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추운지도 모르고 신 나게 놀았다. (작품명 : 밥집인데 왜 이렇게 늦게 여는거야... 흥)
높지 않은 공원 정상으로 오르는 길. 갈림길 앞에서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몇 해전 네팔 카페에서 한 여행자를 만났는데, 내일 트래킹을 떠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 길도 없는 산에서는 나침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먼저 앞서 간 다른 이들의 흔적이나 발자국인데 그것만 찾아 따라가면 누구든지 정상에 오를 수 있어. 내일 트래킹가면 바보 같이 빨리 가겠다고 다른 길로 가서 길 잃어버리지 마. '
그 당시 나에게 충고를 한 여행자는 사뭇 진지했지만,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던 나는 한 귀로 듣고 그 이야기를 흘려버렸다. 하지만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한 가장의 아빠가 된 후 아키타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갈림길 앞에서 문득 그 여행자의 충고가 떠올라 한참을 고민했다. 과연 나의 삶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고요한 아키타의 아침에 거대한 녀석을 만나다.
나의 고민의 답이 없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가끔은 그 길로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많은 이들이 가는 길로 잠시 들어가 두 길을 번갈아가며 2차선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답인지 나의 과정이 맞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고민에 빠져 눈길임에도 힘들지 않게 정상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정상에는 일본 다른 지역에 있는 성처럼 웅장하고 멋진 건물이었다. 1월 ~ 4월까지는 개방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 안내문 아래 이 건물의 이름은 구보타성 오스미야구라이고 파수대와 무기고의 역할을 했던 건물이라는 설명과 전망대에서 시내를 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관광지를 좋아하는 나였다면 굳게 닫힌 문을 보고 허탈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려 했던 식당이 아직 열지 않아 이곳에 온 것 뿐이고, 기대 이상으로 경치도 좋고 기분도 좋았기에 오스미야구라라 불리는 건물 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곤 발자국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학생 저리 가봐. 학생이요? 아 고맙습니다. 신발까지 털어가며 느릿느릿 걷고 시간이 빨리 가 가게 문이 열리는 시간이 되길 기다리는데 산책을 나온 듯 보이는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30대이며 올 7월이면 두 아이의 아빠가 되는 나에게 학생이라 불러주며 어딘가를 추천했다.
나를 학생이라 불러준 것도 좋았고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아저씨가 알려준 곳으로 가봤다.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고봉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웅장한 모습을 시원하게 드러냈다. 그렇게 높지 않은 듯 보이지만 고봉에 흰 모자를 쓴 아름다운 산. 아저씨 덕에 멋진 장소를 발견한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서 거대한 녀석을 감상했다.
아키타에서 이것만은 꼭 먹어봐야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됐다. 미끄러운 눈길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순식간에 내려와 어느새 식당 앞에서 메뉴를 살피고 있었다. 아키타 관광안내소 직원이 아키타 음식을 가장 잘한다고 추천한 향토 음식점(無限堂秋田駅前店).
점심시간이 되려면 1시간 30분은 더 남았는데, 오픈부터 할인 메뉴인 런치세트를 팔고 있었고, 거기에 가미야마상이 아키타에서 꼭 먹어보라며 추천해준 키리단포가 있어 서둘러 들어가 런치 메뉴 하나와 키리단포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사진을 찍기도 귀찮을 정도로 배고 고팠다. 그리고 모락 모락 김이 올라오는 아키타 쌀로 지은 밥을 앞에 있어 대충 사진 한 장을 기록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일본 내에서도 맛있기로 유명한 아키타 쌀. 온라인으로 아키타 호텔을 예약하면서 싸구려 호텔 역시 아키타 쌀로 지은 밥을 제공한다며 비싼 가격을 부르고 있었던 터라 더욱 기대된 쌀밥이었다.
맛은 기대 이상. 일본 여행 출발 전 딸아이 서경이의 돌 잔치 대신 홍대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이천 쌀밥 집에서 지인 여러 명을 초대해 함께 식사 시간을 가졌는데 돌솥밥에 지은 이천 쌀 밥과 버금갈 정도로 찰지면서 맛이 기가 막혔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두 공기 정도는 뚝딱 비울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았던 아키타 쌀밥. 가방에 여유만 있었다면 10kg 정도는 사지 않았을까 싶다.
쌀밥 다음으로 그토록 맛보고 싶었던 아키타의 명물 키리단포가 나의 식탁에 올라왔다. 외국인 여행자임을 눈치챈 직원의 설명으로는 아키타의 쌀로 지은 밥으로 만든 키리단포는 닭고기 육수에 싱싱한 채소를 넣어 끓어 먹는 아키타 대표 음식이라 소개했다.
쌀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양이 어묵 모양이었기에 생선이 들어가 어묵 맛이 나지 않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입안에서 씹힌 키리단포는 어묵 맛은 하나도 나지 않았고 마치 떡 같으면서도 자연의 향을 품고 있는 쌀 맛 그 자체였다.
닭고기 육수가 끊고 있음에도 형태도 변하지 않는 키리단포. 씹는 맛은 살짝 아쉽지만 부드럽고 육수와 잘 맞아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니가타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아키타 주민 말에 의하면 키리단포는 육수를 넣은 나베보다는 살짝 구워 먹는 게 최고라고 한다. 다행히 아키타를 벗어나기 전 구이용 키리단포를 2봉지 정도 샀으니 구운 키리단포 맛은 차후 오사카에서 먹어보고 소개하겠다.
해외여행, 호텔 선택이 중요한 이유.
등 따시고 배부르면 시간에 상관없이 단잠이 밀려온다. 이른 아침부터 아키타 시내를 돌아다녔기에 나의 피로도는 더 했고, 무엇보다 배에서 세수도 하지 않고 내렸기에 우선 호텔에 들러 짐을 풀고 따듯한 샤워를 즐긴 후 시내로 나와 여정을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관광안내소에서 가져온 지도를 꺼내놓고 예약했던 호텔 이름을 찾았다. 역에서 멀지 않고, 아키타 관광신문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호텔 설명과 아키타 쌀밥 조식을 준다는 설명에 위치도 확인 안 하고 예약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역 주변 내가 예약한 호텔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다른 지역 호텔을 예약한 것은 아닐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관광 안내소로 달려가 아키타 쌀밥 조식도 주고 관광신문에 실린 내가 예약한 호텔 위치를 물었다.
다행히 호텔 이름을 들은 직원은 지도 한쪽에 호텔 위치를 체크해줬다. 하지만 역에서 가깝다는 호텔은 택시 혹은 버스로 10분을 가야하고 도보로 약 10분을 걸어 가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급하게 예약을 한 터라 위치 확인을 못한 것도 있지만, 가격도 괜찮고(역 근처 다른 호텔보다 1,000엔이 저렴했다.) 호텔 사진과 설명이 괜찮았기에 예약한 호텔이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10분을 걸어 도착한 호텔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중심지에서 벗어난 외각에 있었다.
거기에 가방을 메고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은 사이즈의 일본 방을 보는 순간 나의 인내심은 폭발했다. 당장 1층 카운터로 내려가 호텔 정보에 적은 사실이 다르다는 것과 내 눈앞에서 수정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내려가면 힘들게 찾아온 이 호텔에서 나가 다른 호텔을 잡느라 고생할 것 같아 꾹 참았다.
이전에도 작은 사이즈의 비즈니스 호텔을 이용해봤지만, 호텔에서 적어놓은 가짜 정보에 당한 것 같은 느낌에 그 방이 더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솔솔 올라오는 담배냄새. 내가 큰 것인지 아니면 침대가 작은 것인지 몰라도 움직이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좁은 침대에서 숙소 선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여행자에게 있어 숙박 선택은 여행에서 매우 중요하다. 저렴한 가격도 중요하지만, 위치와 시설 그리고 자신의 여행 스타일에 맞는 숙박 시설을 예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저렴한 호텔은 저렴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아차 니가타와 도야마 호텔부터 확인해야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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