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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돌이 일상다반사/배낭돌이 여행 에세이

티베트 길 위에서 만난 유목민 가족.

티베트 유목민에서 삶을 배우다. 나의 삶은 이 땅 위에 머물지 않는다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간 동물원. 학창시절 친구들과 떠난 동해 기차여행.

누구에게나 가슴에 담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여행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있어, 어느 날 문득 떠올리면 살포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곳이다.

나 역시 가슴에 담고 있는 특별한 여행지가 있다. 그 특별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언제나 따듯한 안식처 같은 곳이다. <본 포스팅은 필자 배낭돌이가 쓴 기업 사보에 실린 원고입니다. 퍼가기 등 저작물 사용을 금지합니다.>

몇 해 전 나는 중국 서북쪽 꺼얼무라는 작은 도시에서 티베트 라싸로 향하는 삼륜차에 몸을 실었다. 지금은 열차도 다니고 외국인 여행허가증만 있으면 누구든지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인 여행이 까다롭고 버스가 일주일에 한 번뿐이라 라싸로 가려면 현지인 자동차를 얻어 타고 갈 수밖에 없어 선택한 것이 삼륜차였다.

바퀴가 세 개 달린 삼륜차는 앞좌석 내부가 무척 좁았다. 차량 앞쪽에 2개의 좌석이 설치되어 있고 좌석 뒤로 의자 대신 짐을 실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누워서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타보니 다리도 뻗기 어려울 정도로 답답한 공간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더 주고 앞좌석에 앉아 갈 수는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중국 공안이 나타나 검문을 했고, 무엇보다 이방인을 태운 그들은 라싸까지의 여정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편안한 앞좌석을 양보할 리 없었다.

삼륜차에서 보낸 시간은 말 그대로 지옥의 시간이었다. 쉬지 않고 나의 머리와 육체를 흔들어 대는 비포장도로와 고도가 높아질수록 고산증세인 두통이 심해졌고 나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게다가 출발 이후 단 한 차례도 끄지 않은 카세트테이프에서는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중국 노래가 나를 더욱 더 몽롱하게 만들었고, 몇 차례 구토로 수분이 부족해진 나는 앉아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힘이 다 빠진 상태였다.

" 쉬었다가 가자. 이러다 나 죽을 것 같아."
"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 조금만 참아. 쉴 곳을 찾아볼게."

힘들어하는 나와 달리 생생한 기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속도를 더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행동이 조금이라도 빨릴 가려는 배려임을 알지만, 어디가 도로인지도 알아볼 수 없는 곳을 달려가는 거라 흔들림의 고통은 점점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대지는 너의 맨발을 좋아하고, 바람은 너의 머리칼을 흩날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_칼릴 지브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흔들림은 어느 순간 시나브로 사라졌고 계속해서 굉음을 내던 자동차 엔진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가득했고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쫴는 따사로운 햇살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온통 모래와 자갈로 가득한 대지는 고요했고 그 땅을 밟고 선 나는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분명 대지는 나의 발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에게 지난 시간을 고생했다며 나의 머리칼과 육체를 시원하게 식혀준 바람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고 좁은 삼륜차 뒤에서 지낸 지옥 같은 시간들을 금세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 고산증세가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 땅과 바람 그리고 하늘이 나를 치유해준 것 같아.’
'그래도 좀 먹어. 이들하고 인사도 나누고.’

이들과 인사도 나누라는 기사의 말에 잠시 잊고 있었던 주변을 살폈다. 초원 위에서 양들과 함께 생활하는 티베트 유목민 가족이 낯선 이방인에게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네고 있었고, 줄 하나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20마리 남짓한 양과 부지런히 그들의 젖을 따는 아낙네들이 눈에 띄었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 내 눈을 의심케 하는 풍경에 이내 넋을 잃었고, 현대 문명에서 떨어져 나온 이방인은 조심히 그들 곁으로 다가가 눈인사를 건넨 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땅바닥에 앉아 양을 눕혀놓고 가위로 털을 분리하는 아저씨. 이방인이 입은 옷과 자신들과는 다른 외모가 신기한듯 시선은 나에게 고정한 체 계속 젖을 째고 있는 아낙네들과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는 남자아이까지. 자연에서 생활하는 그들이기에 얼굴은 햇볕에 까맣게 그을리고 옷은 허름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나에게는 없는 여유로움과 알 수 없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서로 마주 본 채 빼곡하게 묶여 있는 양들. 불편한지 이리저리 몸과 목을 흔들어 보지만 하나로 묶여 있는 끈을 풀기에는 힘이 모자라 보인다. 마치 젖을 짜는 아낙네에게 끈을 풀어 달라고 속삭이는 듯한 몸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든 말든 녀석들의 마음을 알리 없는 아낙네는 젖이 들었는지를 확인하듯 녀석들의 젖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본다.

티베트와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곳 모두 길이 없다는 것이다. 도시에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길을 삼켰고 현대인들은 편리를 이유로 자동차 안에서만 길 위에 머물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이곳 티베트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돌과 모래, 바위와 자갈만이 가득하다. 그들은 편리함보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선택했고 동물과 함께 길도 없는 길을 돌아다니는 유목 생활로 길 위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법으로 사는 그들이었기에 이방인에 비추어진 그들의 생활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일 뿐. 여러 마리의 양젖을 짜려면 양을 일렬로 묶고 젖을 짜는 것이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정착 생활이 아닌 자연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전자 제품이나 문명의 이기는 대부분 짐에 불과했다.

가족 모두 각자의 업무를 가지고 생활한 그들에게는 부족함이라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뒤도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 그들의 고향이자 불교 성지인 라싸로 가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은 모두 내려놓고 가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가방 가득 담아 온 언제 사용 할지 모를 많은 물건들과 가슴에 품고 있는 조바심, 두려움 그리고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무게 운 삶의 고민을 말이다.

고산증세로 힘들어하는 이방인에게 고산증세에 좋다며 영양가가 풍부한 양젖을 건네는 유목민 가족. 따듯하게 데운 양젖을 마시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평화로움이라는 여유를 만끽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오른 자동차. 연신 고개를 들어 인사를 건네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긴 여행이 끝난 지금도 그들과의 만남은 나의 가슴 한 구석에 편안히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날 때마다 나 자신에게 속삭인다. 나의 삶은 이 땅 위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