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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여행 후기/중국 서안/화산 배낭여행

서안여행 - 보고 있어도 믿을수 없는 서안 병마용

티베트를 지나 시작된 서안여행. 서안여행의 시작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병마용을 선택하였습니다. 서안을 찾는 여행자 99%는 꼭 가보는 서안 최고의 관광지 병마용.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은 어디서나 오래된 유적지, 관광지를 찾아볼수 있지만 병마용은 크기는 물론 8천여점의 흙으로 만든 병사와 수레, 전차 등이 발견되어 중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꼭 찾게 되는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70만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상상할수도 없는 규모 지여졌으나 오랜시간 뭍혀있어야만 했던 병마용갱은 1974년 처음 발굴을 시작으로 아직까지도 추가로 발견이 될만큼 말로는 설명할수 없는 엄청난 규모로 조금씩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그럼 중국 최고의 관광지 병마용으로 들어가 볼까요?


1974년 우물을 파던 한 농부가 발견되면서 지금까지도 대대적은 공사를 통해 총 7호갱까지 발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병마용갱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1호, 2호, 3호 갱과  병마용문물전시관(박물관) 이렇게 4개 군대가 개방이 되어 있는데요, 실제 갱입장보다는 사진속의 병마용문물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한쪽에 소녀의손을 잡고 있는 병마용을 만날수 있었는데요,사진으로는 그 크기를 알수 없을정도로 엄청나게 큰 병마용이 관광객들의 탄성을 불러 일이킵니다. (베이징 올림픽 기념으로 거대한 마리오네트를 놓았다고 하는데,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조금은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의 병마용이나, 무표정한 소녀의 얼굴이 역사속의 병마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슨 생각과 무엇을 표현하려 입구에 이런 마리오네트를 배치하였을까요?)

 
입구의 거대한 마리오네트를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왔습니다. 이름 그대로 병마용문물전시관(박물관) 으로 내부에는 병마용갱에서 발견 된 다양한 종류의 병마용과 다양한 조각상들이 구석구석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하면서 부터 정말 기대했던 병마용이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구석구석을 돌아보왔는데요, 그중 가장 인상적인 병마용이 있어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 왔습니다.

2000년이라는 시간동안 땅 속에 묻혀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뛰어난 중국의 병마용. 그중 사진속의 병마용의 표정에서는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이 "여기 왜왔니" 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한 표정으로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장군상, 입사통, 무사용, 마차 등 다양한 병마용이 있었지만 유독 살아있는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사진속의 병마용 (병마용은 하나하나 표정이 다 다르디고 합니다. )


현재까지 발견된 8,000점 이상의 병마용들이 얼굴 표정은 물론 신장 등이 모두 다르게 조각되어 있어 더욱 놀라운 병마용. 우뚝 서있는 자세로 먼곳을 주시하고 있는 장군상에서는 아직까지도 진시황제를 지키기 위한 옛 중국의 장군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수 있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최고의 황제 진시황. 진시황은 죽어도서 장군의 호위를 받고 싶었던 거였을까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기록 될 만큼 전세계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병마용. 과연 진시황제가 죽었던 그 시대에 중국의 서안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났을까요? 오랜시간이 흐른뒤에 발견된 병마용은 표정은 물론 복식, 갑옷과 표정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당시의 전쟁술 문화사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후에도 황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병마용, 병마용문물전시관(박물관) 다음으로 향한 2갱에서 또한번 큰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못했습니다. 1974년 우물을 파던 한 농부가 발견하였던 1호 갱과 근접한 곳에서 1976년에 발견 된 2호갱. 1호갱과는 달리 보병, 기병, 전차대, 무사용 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1호갱보다 발굴 속도가 엄청나게 늦다고 합니다. (현재는 실험 발굴을 통해 실제만 확인하고 다시 묻어 본격적은 발굴을 미루고 있다고 합니다.)

마용이라도 원상태 모습으로 발굴하기 위해 내시경을 이용하여 땅속을 미리 확인하고, 흙을 거두어 내는 방식으로 최초 발견든 1974년부터 지금까지도 발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호갱과는 달리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2호갱의 병마용은 그 당시 중국의 전생술을 지막할수 있는 배치로 병마용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조금은 인위적으로 병마용을 나열해 놓은 2호갱. 아직도 발굴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갱이지만, 관광지로 병마용을 오픈하면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흘려놓은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다른 나라와 달리 이곳이 진짜일까? 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공개하였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배치해 놓은 2호갱을 보면서 설마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진시황제.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죽어도서 지하궁전에서 수천명의 병마용과 생활을하고 있습니다.


2호갱과 달리 3호갱에는 목이 없는 병마용이 많이 보입니다. 1호와 2호 갱과는 달리 지휘관 부대의 병마용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3호갱에서는 1호, 2호에 발경된 병마용과는 달리 머리가 없는 병마용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부분으로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요, 그중 한가지는 다른 갱들과 달리 지휘부인만큼 얼굴을 묘사하는데, 그 당시의 지휘부 얼굴을 묘사하기 위해 죽은 병사에서 부터 살아있던 지휘부까지 한명 한명 묘사를 통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이에 오랜시간이 걸렸고, 이미 죽은 병사나 다른 지역에 있는 지휘부 병사의 얼굴을 확인할 길이 없어 머리가 없는 병마용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한가지 주장은 병마용 제작과정에 따른 미제작설인데요, 몸통과 얼굴을 따로 만들어 하나로 조립을 하여 만든 병마용인만큼 다른 갱에 비해 조금은 늦게 제작이 되어 머리가 없는 병마용이 많다고 합니다. 어떠한 주장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알수 없지만, 얼굴이 없는 병마용은 다른갱의 병마용에 비해 당당함보다는 외로움이 가득 배어져 있습니다. (그냥 제 생각인데요, 당시 병마용을 제작하던 하층의 병사 또는 사람들이 지휘부의 얼굴을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왔습니다. 계급사회인만큼 인물화는 물론 모형을 제작하더라도, 계급에 맞는 신분의 사람들이 작업을 해야 했을텐데, 수천명의 병마용을 제작하는 당시 하층 계급의 사람 또는 병사가 많이 동원된 만큼 지휘관들을 묘사할수 있는 계급이 너무 적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왔습니다.)


2000년 동안 땅밑에서 잠들에 있던 병마용은 깨지고 부셔진 상태로 우리에게 모습을 들어냈습니다. 죽은 황제을 지키기 위해 진흙으로 빗저 구워져 만들어진 병마용. 20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아직까지 진시황제의 곁에서 동쪽을 바라보며(진시황제가 멸망시킨 다른나라들이 위치한 방향) 보이지 않는 전쟁을 계속 하였던 걸까요?

최초 발굴당시 채색이 되어 있던 병마용은 정말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보존 능력이 부족하여 땅밖으로 나온 병마용은 기존의 채색을 모두 잃어버리고 흙색을 돌아갔다고 해요)


2호갱과 3호갱을 지나 가장 많이 알려진 1호갱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떻게 큰 규모의 1호갱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달이 되어 지나요? 가장 먼서 모습을 드러낸 병마용 1호갱은 길이 230m, 너비 62m, 총면적이 14,360㎡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로 가장 많은 병마용이 발굴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항공사 대한항공 광고에서도 나올정도로 병마용 갱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1호갱, 6,000여개의  병마용이 3열 횡대로 늘어서 있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였습니다. 2000년 이라는 시간동안의 긴잠에서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만큼 가장 많은 복원이 되었있습니다. (발굴작업을 하면서 추가로 여러 갱들이 발견됨에 따라 20년동안 멈추었던 1호갱 발굴사업이 작년 6월부터 재개되었습니다.)


다가갈수 있는 거리가 제한이 되어 있는터라 줌을 이용해서 표정을 담아 보왔는데, 어떻게 병마용 하나하나의 다른 표정들이 보이시는지요? 눈물 물론 코 입까지도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진 병마용의 얼굴을 보면 너도 나도 할것 없이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영화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것 같은 병마용 군사들.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앞으로 달려올것만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밤마다 움직인다는 말도 안돼는 소리가 나돌았는데요, 이곳 병마용에서는 시간과 상관없이 금방이라도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내 앞으로 다가 올것 같습니다. 


1호갱에는 다른 갱에서는 볼수 없는 두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추가금액을 내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병마용 부대를 뒤로하고 함께 사진을 찍을수 있는 공간이구요, 위 사진속에서 보이는 최초 발견지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병마용 2,3호갱 옆에 위치한 상점건물에서 병마용에 관련된 무료 영상을 볼수 있었는데요, 1974년 우물을 파던 한 농부가 땅을 파는 도중 병마용 일부를 발견하게 되었고, 관청에 보고를 통해 2000년이라는 시간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병마용을 발굴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농부의 우연한 발견이 없었다면 더욱 오랜시간을 땅속에서 묻혀있어야만 했던 병마용. 이들은 왜 2000년이 지난 1974년 한농부의 발견으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인간으로는 불가능 했던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진시황제. 불과 22세의 나이에 황제에 오른 진시황제는 6개국을 멸망시키고,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된 중국을 만들었습니다. 이룰수 없을것만 같았던 통일의 꿈을 이룬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지만, 진시황제만의 지하궁전에서 수많은 병마용과 함께 보이지 않는 진나라를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불가사리 병마용. 중국 서안을 대표하는 만큼 실로 엄청난 규모의 병마용갱을 만나보실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병마용을 보기위해 서안으로 가시기 보다는 진시황제, 진나라, 병마용에 대해 미리 공부하시고, 병마용을 방문하신다면 정말 의미있는 여행이 되라리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