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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후기/일본 북부 겨울 자전거 여행

눈의 도시 삿포로에서 만난 이색풍경.

눈의 도시 삿포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삿포로의 이색 풍경.


눈이 보고 싶었다. 군대 시절 훈련소에서 함께 지낸 동기 녀석들에게 들은 허리춤까지 쌓인 눈을 보고 싶어 이곳 일본 삿포로를 자전거 여행의 출발지점으로 정하였다. 

인천 - 오사카에서 출발해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내리기 전까지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번 일본 겨울 자전거 여행은 많이 넘어지고, 이겨내기 어려운 시간을 경험해 보고자 왔기에 나의 자신감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삿포로에 도착하면서 그 자신감은 적지 않은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모든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삿포로는 그야말로 나에게는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눈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눈이 만든 눈의 도시 삿포로.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어제 늦은 저녁 총총걸음으로 도착한 삿포로 숙소에 짐을 풀고 앞으로 시작될 자전거 여정을 체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전거 구매. 이번 자전거 여정은 눈으로 쉽지 않은 여정이고 무엇보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기에 한국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 일본에서 구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둠이 깔린 삿포로의 모습은 공허했다. 높은 건물이라고는 20개 남짓한 넓은 도시는 불빛만이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서울에서 보던 풍경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삿포로에서 맞이한 아침은 어제 느낀 공허함을 한방에 날려보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빼곡히 늘어선 건물 대부분을 하얀 눈으로 뒤 덮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그 모습은 서울 촌놈인 나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역을 차지한 눈의 반란(?).

서울에서도 겨울에 두 세 번 폭설이 내리지만, 이곳의 눈은 달랐다. 마치 지구를 자신들의 소유물인 마냥 모든 곳에 도로, 건물을 지어놓은 인간들에게 질투하는 듯 인간의 영역 전부를 덮고 있었다.

건물 위에 쌓인 눈의 두께를 얼핏 봐도 약 30cm 이상. 말로만 듣던 지금 상황을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어 가슴 속 숨을 벅벅 끌어 올리며 웃음만 내뱉을 뿐이다.

흙과 모래보다 눈이 더 많은 삿포로.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일본 최남단 홋카이도를 점령한 눈은 쌓이고 쌓여 미끄러운 빙판길을 만들었고, 이런 환경이 처음인 이방인은 걷는 것조차 힘들어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 주춤 거리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미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도로 옆에 쌓여 있는 눈. 높이가 약 3m 정도는 되어 보이는 눈이 만든 벽은 마치 전쟁을 앞두고 적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방어벽과 같아 보였다.

눈으로 만든 자동차 케이크 하나 하실래요?

신기했다. 보통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일 텐데 삿포로에 사는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조금 미끄러운 축구장을 걸어가듯 약간은 어색하긴 했지만, 30대인 나의 평소 걸음보다 약간 느릴 뿐 거침없이 눈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발에 뭐라도 부착한 건가? 아니면 삿포로 전용 신발이 있나? 아무리 신발을 쳐다봐도 그 해법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경험이 해법이다. 라는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 자전거도 살겸 정보도 얻을 겸 약 12km 거리에 있는 삿포로 역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처음엔 서 있기도 쉽지 않았는데 제법 속도가 난다. 심지어 눈에 익숙해진 나는 평평하게 언 도로를 발견하면 속도를 내 달려가 뒷발에 힘을 줘 미끄럼을 즐기는 노하우까지 터득했다. 걸음걸이가 조금 자유로워지니 놓치고 있던 주변 풍경이 하나 둘 들어왔다. 눈으로 사라져 버린 야외 주차장. 쌓인 눈이 무너져내려 반쯤 가려진 버스 정류장 표지판. 그리고 초콜릿 빵에 생크림을 발라 놓은 듯 자동차 위에 쌓인 눈을 발견하곤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우며 스고이(대단해) 를 연발했다.

훗카이도에 사는 사람들이 휴가를 못가는 이유(?).

더욱 기가 막힌 장면은 길을 잃고 들어간 주택가에서 발견했다. 꽤 넓은 마당까지 갖춘 일본 가정집이었는데 여행으로 집을 비운 것인지 대문에서 현관까지 이어지는 정원에 눈이 약 1m 정도는 쌓여 집 내부 연결하는 현관문까지도 1/3쯤 눈으로 덮여 있었다.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가지? 여행이라도 간 건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정원의 눈을 치우지 않은 이 가정의 가족은 따듯한 집으로 돌아간다는 행복함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대문에서 현관까지 쌓인 눈을 보며 울상을 지을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많이 눈이 내리는 삿포로. 과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 여행 또는 휴가를 갈 수 있을까? 물론 내가 이곳에 산다면 일본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아파트에서 살 거다.

삿포로 여행 안내소. 감사합니다.

길이 미끄러운 덕에 평소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3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일본에서 5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사람을 자주 볼 수 없었던 삿포로. 어디서 숨어있다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따듯한 삿포로 역에서 놀고먹는 것 모두를 해결하는지 역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오는 내내 자전거 판매점을 찾았지만 대부분 문이 닫혀 있어 도움을 요청하고자 들린 관광안내소. 직원분께 다가가 어설픈 일본어로 가까운 자전거 판매점을 묻자 한국어로 해도 된다며 반가운 한국말을 건넨다.

' 오 반갑습니다. 가까운 자전거 판매점을 찾고 있어요. '
' 자전거 판매점이요? 여기 사시나요? '
' 아니요. 자전거로 오사카까지 여행하려고요. '
' 이 겨울에요…? '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물론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은 하지 않는 겨울 자전거 여행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사정을 들은 아주머니는 마치 자기 일인 듯 인터넷으로 주변 자전거 판매점을 알아보고 전화까지 하며 도움을 주어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했다. 내가 찾은 시간은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고 예상하지 못한 많은 도움을 주셨기에….

아쉽게도 결과는 실패. 눈이 많이 내리는 홋카이도 지역은 11월부터 4월까지 자전거 판매점은 물론 대여점과 수리점까지 정식 휴일로 지정해 놓기 때문에 대형 판매점에서도 자전거를 찾기가 어렵다 했다.

집만 가까우면 자신의 자전거를 주고 싶다 말씀하신 아주머니. 앞에서는 괜찮아요. 내일 찾아보면 되죠! 말하며 인사를 건네곤 나왔지만, 아주머니와 함께 여러 곳에 전화로 문의를 해봤기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주머니 오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시 삿포로를 찾을 때 맛있는 한국 떡 꼭 들고 인사드리러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많은 한국여행자에게 많은 도움 부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길 위에서는 예고 없는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은 여행의 가장 포인트인 자전거조차 구하지 못하는 대형 문제가 발생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 고민만 가득 쌓인 삿포로에서의 두번 째 밤. 평소 즐겨 마시던 맥주가 오늘따라 무지 쓰다. (to be continued)